백두대간

화령재에서 개머리재까지(대중교통으로 백두대간을)

양각산 2010. 10. 4. 14:58

 

 언제 : 2010. 10. 1. 금요일 아들 생일 날에

 누구랑 : 홀로

 어떻게 : 대중교통으로

                     오늘 걸은 백두대간 길에서 가장 높은 산이 이 윤지미산이다.

                     백두대간이라 하면 어떤 이는 대단한 곳으로만 생각하는데, 근 20km의 백두대간을 걷도록 이 산 외에는 500고지 산도 없다. 대전의 근교 산

                     보문산만도 못한 높이로 쉬운 백두산 길이다. 백두대간 중 가장 낮은 고도로 흔히 중화지구대라 하는데 .........

              * 중화지구대 : "백두대간의 경계를 넘어온 그 경상도 땅 여섯 고을을 두고 생겨난 말이 바로 중화지역이다.

            화서, 화북, 화동, 화남의 4개 면은 본래의 화령현이요, 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중모현이니 중화란 바로 상주목을

            따르던 중모현과 화령현을 뭉뚱그린 이름이다." 돌구름 카페에서 퍼옴

                "중모현과 화령현의 앞 자 한자씩을 떼와 조합한 단어인 듯" -양각산 생각-

 

                산행 일지 : 집(6:20)-시내버스-동부터미널(7:10)-화령(8:30)-화령재(9:02)-백두대간 산행 시작(9:05)-고속도로 터널 위(9:12)-윤지미산(9:58)-

                                무지개산(11:26)-삼각점 봉(12:29,점심~48)-신의터재(1:04)-지기재(2:31)-개머리재(3:27)-소정리 입구(3:47)-

                                        소정2리(선유동, 4:19)-장구렁 못(4:26)-지기재 도로 승강장(4:37)-석산리-도안리-모서 중화로(5:43)...........

                                        택시(18000원)로 화령(화서).... 7:40- 집(9:10)

                 대간 거리 : 18.3km, 기타 걸은 거리는 모르겠고 2시간 30분 이상 걸었음 

     

              

화령재

 

  상주고속도터널 위

 

            

                 화령재 너머의 봉화산

                                                                                                                                                             윤지미산

        

 

     날 좀 보소(아우성) 

 

                 무지개산

 

 백두대간 길

 

         점심 시간                  

 

                                                                                                     신의터재(280m_

 

 

 

 

대간 마루금은 밟을 수 없다

지기재

  지기재를 지나면서는 표지목이 달라졌다. 같은 상주 땅인데, 면이 달라졌나? 

         

 

 

개머리재(소정재)

 *  중화(中化)지역...(퍼온 글) 

  산천의 전통은 유구하여 대대로 강원과 경상이 그로부터 갈리고, 충청과 경상, 전라와 경상이 그로부터 나뉘었다.

  오늘날의 도계(道界) 또한 변함없이 백두대간을 따라 마루 금을 그었으니 이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경계가 아닌 탓이다.

  다만, 지도를 펴놓고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긋다 보면 몇 군데 대간과 도계가 어긋나는 곳이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 마을은 강원으로 백두대간의 도래기재를 넘어갔고,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와 부석면 남대리는 충북으로

  각각 백두대간의 고치령과 마구령을 넘어갔다. 

  상주 화령 일대의 무려 6개의 면은 대간을 넘어 깊숙이 충북 땅으로 들어섰으며, 전북 남원 운봉읍을 비롯한 3개면은 경남으로

  대간의 여원재를 넘어 팔량치에서 도계를 이룬다.

  백두대간을 넘어온 경상도 여섯 고을 - 속리산 갈림길에서 상주 길로 30리쯤이면 충북과 경북이 도계를 이루는 적암이다.

  풍수에서 십승지의 하나로 꼽는 명당을 품었다는 구병산(876m) 아래 그저 평평한 들판 위에서 엉거주춤 도계가 나뉜다.

  그로부터 백두대간의 화령까지는 30리 길이다. 속리산 형제봉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난 도계는 적암을 지나고 백화산(933)을 휘돌아

  추풍령 위쪽 국수봉(684)에 이르러야 다시 백두대간과 만난다.

  백두대간의 경계를 넘어온 그 경상도 땅 여섯 고을을 두고 생겨난 말이 바로 중화지역이다.

  화서, 화북, 화동, 화남의 4개 면은 본래의 화령현이요, 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중모현이니 중화란 바로 상주목을 따르던 중모현

  과 화령현을 뭉뚱그린 이름이다. 

  오늘날까지 중화지역이 경상도 땅으로 뿌리를 뻗은 것은 아마도 신라와 백제 마지막 국경에서 비롯된 전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남원의 팔량치 일대가 비록 백두대간의 동쪽이지만 전라도 땅으로 굳어진 연유도 비슷한 내력이 숨었을 터이다.

  낮은 산줄기로 이어지는 그 두 곳은 싸움의 결과에 따라 쉴새없이 국경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 두 곳은 백두대간이 천연의 국경 역할을 잃었기 때문에 힘이 센 어느 한 쪽이 상대의 영토 깊숙이 쳐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

  이었다. 물론, 이는 사람이 걷거나 기껏 말이나 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첨단 문명의 시대에도 종류는 좀 다르지만 비슷한 사연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싸움이 있었다.

  얼마 전, 문장대 용화온천의 개발을 둘러싸고 충북과 경북이 서로 팽팽하게 맞섰던 사건이 그것이다.

  용화는 바로 화북면이니 경상도 땅이지만 백두대간을 넘어 온 탓에 그 물은 달래강을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한강 수계이다.

  돈벌이는 경상도가 하지만 수질 오염의 대가는 고스란히 충북의 몫이다.

  결국 경북 쪽의 개발 포기로 단락을 맺은 이 사건은 지방의 경계가 백두대간을 따르지 않았던 탓에 일어난 분쟁이었다.

  삼백(누에, 쌀, 곶감)의 고장 상주는 신라의 두번째 도시였고 삼국시대의 중요한 격전지였다.

  아자개와 그의 아들 견훤의 주활동 무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경주와 상주를 합하여 8도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경상도의 지명에서

  보듯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지역이다.

  또,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팔역지에서「조선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상주와 선산에 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