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山城)

남한산성

양각산 2010. 2. 28. 19:16

   2010년 2월 27일~28일의 가족 여행을 했다.

  숙소를 곤지암리조트로 정했었고, 오후 두 시 넘어에 들 수가 있기에 짬을 이용하여 남한산성을 들러 보기로 했었다. 걷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가족이라 나홀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달랑 한 시간을 주면서 다녀오란다.

  여섯이 가서 다섯은 만해 기년관과 행궁만 보았단다.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문화재청-

 

 언제: 2010. 2. 27.

 노정: 남한산성 동문-산성로타리-남문-산성-수어장대-주차장 

남문(至和門)

 

 

 

 

 

 

 

 

 

 

 

 

 

수어장대(守禦將臺)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건물의 바깥쪽 앞면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건물의 규모는 1층은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2층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2층 4면의 바깥기둥은 1층의 높은 기둥이 연장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96년에 유수 박기수가 다시 고쳐 세운 것으로 인조 2년(1624)에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매바위

 

수어장대

 

 

   위 사진의 한옥 건물들은 문화재가 아니고 거의가 먹거리 건물들이었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 성 안이었고...... 그 때는 얼마나 줄였었을까......  지금은 먹거리가 넘쳐나는구나!

 

    뱅쿠버에서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세계 만방에 휘날리며 세계 중심에서 힘을 발휘하는데........ 그 때는.....

   격세지감을 실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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