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대간 길에 나섰다.
지난 달 8월 25일에 아들놈이 육십령으로해서 삿갓재에서 일박하는 덕유산 등반을 한다고 나섰었다.
그 날 1시 넘어 궁금하여 전화를 했더니 오르막에 힘들다 했었다. 음 할미봉을 올라채나 보다 했다.
다섯 시 넘어 전화를 했었는데 영취산 어쩌구 한다. 육십령에서 북쪽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갔었던가 보다. 준비성이 지 애비 닮았다.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다하면 더했지...다.
또 그 때 산행 중에 아들놈이 무슨 짐승을 보고 크게 놀랬나 보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오르려는데 뿔달린 시커멓고 큰 짐승(후에 안 일이지만 염소다)이 사람을 오히려 노려보더란다. 정말 간떨어질만한 경악이었던 듯싶다.
내 속으로 山羊이 아닐까 추측하며 혹이심이 발동했었다.
오늘 마침 기회가 왔다.
마산에 사는 처남과 댁 조카들이 어제 우리 집에 들러 선산에 성묘하고, 하룻밤을 묵고 내려간다
그 차 편에 우리 내외가 편승하여,남대전나들목을 진입하여 장수IC로 나와서 육십령에서 내렸다.
차 한 잔씩 빼서 마시고 나서 기념 사진을 박으려 하니....!! ??. 디카의 바테리가 다됐다.
너무너무 아쉽다. 준비성 없기는 내가 아들보다 더하다.
2008년 9월 16일 10시 20분에 육십령 들머리에 우리 둘이 조심스레 대간 길에 들어선다.
척추가 이상이 있는 나나, 백두대간 하면 대단하고 힘든 줄 아는 아내는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영취산을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한 10분쯤 갔을 때 한 산꾼을 만났다. 느긋하게 앉아 쉬고 있는 산꾼!
대간을 하다보면 하루내내 한 사람도 못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은 벌써 산꾼을 본다!
반갑다. 그리고 인사한다.
그는 심춘택 씨란다. 대전 갈마동에서 32년을 살다가 지금은 대구에서 32년을 산단다. 대충 들으니 내 또래일 듯싶다.
그래서 실례 무릅쓰고 몇 년도 생이냐고 물으니 1946년 개띠란다. 내 나이 밝히며, 산 이야기를 해댄다.
그는 13일에 고기리에서부터 오는 길이고, 산 위에서 2박을 했단다.
반바지 차림인데 종아리가 긁힌 자욱이 요란하다.
배낭을 보니 대단하지는 않다. 텐트는 고사하고 침낭도 없을 듯했다.
밤에 잘 때 무섭지 않았냐니까 전혀란다.
혹시나 해서 잘 땐 봉우리 넓은 공간의 곳에서 잤다고 한다. 그래야 짐승의 접근을 살피고 방어하기에 좀 나을 듯해서일 것 같다.
식사 얘기도 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초코파이 열두 개, 그리고 어데센가 칼국수 한 그릇으로 지금까지 왔댄다.
어제 하루내내 물이 없어 물고생도 무지무지했단다. 그러다 오늘 깃대봉샘터를 만나 배가 빵빵하게 마시고 물병도 많이 다 채웠단다.
그는 또 대구에서 '산산악회' 회원이고 대장도 한다며, 이 말고도 서너개의 산악회에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는 디카가 없어, 염치불고하고 사진 한 방을 부탁했다. 그와도 기념되게 한 방 찍고.....
내 그에게 남덕유산을 거쳐 영각사로 하산하라고 조언 주고 왔는데 그는 잘 갔는지?
그는 고생고생하며 산행을 하는 것 같다. 먹거리도 너무 부실하다. 염려스럽다.
11시 30분에 깃대봉샘터에 다다랗다.
여기서도 산꾼 한 분을 만났는데 전주 사람이었다. 전주제일산악회에서 활동하는 "두지"라는 분으로 40대로 보인다.
포도를 큰 통에 담아와 반 정도는 줄었다. 그 옆에 떡 그릇도 보인다.
먹으라 권하는데 아니 먹을 수 없어 몇 알 입에 넣었는데, 아니 이처럼 달 수가 있나! 손이 저절로 통 속으로 간다.
집식구는 맛을 말해버린다. 아니 포도가 이처럼 달 수가 있냐고.
그러니까 그는 포도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용지 포도고 다른 한 가지는 어데라고 했는데, 용지 포도가 달단다.
용지 하기에 내가 아는 용진이냐고 물으니, 용진은 완주군이고 용지는 김제 어드메란다.
그는 무령고개에 차를 세워놓고, 7시에 시작하여 여기에 와 있고, 육십령에서 택시로 무령고개에 2시에 도착 예정이란다.
일행을 사치재에 내려 놓고 그는 대간 땜방을 하고 있단다.
이 분은 심춘택님과 너무 차이가 난다.
좀전에 도시락을 먹었다는데 도시락은 정말 작았단다. 집식구 말을 빌리면 유치원생 도시락 크기란다.
그러나 그는 간식을 많이 하는가 보다.
가면서 계속 군것질(?) 한단다. 바나나 말린 것, 양갱, 양갱은 아직도 다섯 개 이상 남았단다. 보니 체력이 넘쳐난다.
풍요롭고 넉넉하게 산행을 한다.
그가 남은 떡을 주기에 받아왔고, 포도도 남은 것 우리가 거의 다 가져왔다.
육십령만 가면 그만이라고 하며 주는데 인심이 덕유산만하다.
구시봉(1014m)!
전에는 깃대봉이었는데, 많은 책자나 산행기엔 깃대봉이라 했는데 구시봉인가 보다.
구시는 소 밥그릇으로 내 고향에서는 '구세'라 했는데 아마 함양이나 장수 어디메서 보면 그 구시처럼 보이나 보다.
육십령에서 2.5km의 지점인 깃대봉에11시 49분에도착했다. 할미봉을 거쳐 남덕유로 뻗친 대간이 호방하다. 사방 조망이 빼어나다.
육십령에서 6.4km 지점 장수 방향으로 북바위가 있다.
암석으로 조망이 빼어난데, 올라서자마자 냄새가 상쾌하지가 않다.
주변을 살펴 보니 염소똥이 즐펀하다. 음 여기가 우리 아들이 놀란 곳이란 걸 금방 알겠다.
염소는 보이지 않지만 염소똥이 암봉까지 검은 콩 널어논 것 같다. 이 가파른 곳에 어떻게 염소가 오르내리는 지가 경이로울 뿐이다.
한 시가 훨씬 넘었다. 두지님이 준 떡과 포도를 먹었으니 배는 고프지가 않다.
그래도 점심은 해야지 하고 봉을 넘고 넘다가 적당한 그늘에 도시락를 펼쳤다. 안 먹힐 듯한 밥이 제법 당긴다.
도시락 반을 넘겨 먹으며 무심히 앞을 보니!
화들짝!.......... 독사다.
집식구가 내려놓은 스틱 날,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5cm도 안 되게 독사 대가리 있고, 그 뒤로 길게 40cm를 느리고 있으니, 마누라와 2m도 안 되는 거리에....
이걸 독사다 라고 소리쳐 말아......
결국 물 만 밥을 조금 먹고 작은 소리로 저기 뱀이 있네. 했것다.
마눌 놀랠 뜻은 전혀 없었지만 먹던 도시락 들고 펄쩍 도망치는....
그리고 밥맛을 잃는다.
내가 설교했것다.
모든 짐승은 건드리지 않으면 공격을 안 한다고 .....
하면서 스틱으로 뱀대가리 턱 밑에 살짝 드리밀어도 꼼짝 않는다. 내 머리 뒤끝이 쯔삣 선다.
스틱으로 걸어서 떠내버리라는 마누라 말에도 살짝 겁이 나 그 짓 못하고, 남은 밥 다 먹으니 그제사 설설, 정말 천천히 자리를 뜬다.
독사는 보호색을 띄기에 잘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조심해야겠다.
덕운봉일 듯한 봉을 2시 47분에 통과하여 영취산 정상에 이르니 1075m란 영취산 정상석이 우릴 반긴다.
여기는 금남호남정맥의 시발점으로 오른쪽 무령고개 건너의 장안산이 잡힐 듯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1237m의 웅자가 넉넉하다.
영취산이르기 전 1,4km에 논개 생가 갈림길이 있는데, 그 지점을 좀 지나는데서 한 산꾼을 만났다.
그는 중고개에서 오는 이로 육십령까지 간단다. 얼굴이 곱고 고생한 흔적이 없는 이로 말씨도 고왔다.
오늘 세 산꾼을 만났는데 다 각기 특색들이 있다. 대간 길 13km에 세 사람의 같은 점이란 홀로 산행한다는 것뿐인 듯했다.
고달프고 힘들게 하는 이, 풍성하게 들며 마시며 넉넉하게 즐기며 하는 이, 홀로 유유자적 고고하게 하는 이.....
무령고개 휴게소에서 음료수 한 잔 하고, 4시 쯤에 서둘러 749번지방도를 따라 내려온다.
택시를 불러 장계까지 갔으면 좋겠지만 내 철학은 용납하지 않는다. 마눌에겐 미안하지만 하는 수 없다.
집식구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야 걷다가 차가 있으면 타고, 없으면 걷고, 밤이 오면 자고 그러면 되지만 ....
식구는 이를 알고 따라왔기에 군소리 없이 따라온다.
실은 미안하다. 이 무더운 날에 산길도 아닌 포장도로를 땀 뻘뻘 흘리며, 젊은 나이도 아닌 아내에게 말이다.
지승이나 논개사당이 있는 대곡리까지는 어쩌면 6km 내외의 거리로 여자들 걷기로는 제법 벅차다.
승용차가 지나가고 봉고트럭도 지나간다.
2~3km쯤 걸었을 때, 참 멎진 차 한 대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다가 저만큼에서 멈춰 선다.
검은 색 고급 승용차다. 다다르니 타라신다.
지금까지 타 본 차 중 가장 고급스럽고 안락한 차다. 내려서 마눌이 무슨 차냐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했다.
익산에 사신다는 산꾼 부부인데 한 주일이면 두어 번 정도 와서 장안산, 영취산, 백운산 등을 돌고 간단다.
알려진 산길보다도 가느다란 길을 더 좋아하고 약초나 버섯에도 관심이 있단다. 간혹 산삼도 캤다고 옆에 부인이 자랑한다.
계남버스승강장에 내려 주었는데 말과 가슴으로 고마왔다. 내리자마자 대전직통 버스가 금새 와 우리를 태웠다.
조심스레 떠난 대간 길이 행복했다.
심춘택님 전주의 두지님, 익산의 부부 산꾼님들 때문에 하늘은 높았고 산은 더욱 포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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