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0월의 어느 한 주(양각산 일기)

양각산 2018. 10. 21. 12:38

 2018년 추석 연휴 말에 아들네 집에 갔었다.

1주일 아니면 10일 간 그 곳에서 머물려 했었다.

9월 26일 밤 9시 쯤 출발했었는데, 아들 집에는 자정을 넘겨들어 갔었다. 그러니 9월 27일이었다.


애들은 자고 있었고, 집식구에게 새벽 밥을 부탁해 청와대 뒷산 북악산을 다녀왔었다.

그런데 집식구가 다리가 아프다고 했었다.

노인네는 대부분 많은 병을 데리고 살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었다.

밤에는 운신을 하는데 악소리를 냈었다.

이거 탈이네! 아들의 아들(손자)을 우리가 일주일 남짓 돌보려 왔었는데, ......


막내딸의 막내 지후도 데리고 왔었다.

큰딸과 막내딸이 제주도 여행이 있기 때문이었다.

큰애 지환이는 데리고 가고, 19개월 짜리 지후를 우리에게 주고 갔었다.

즈네들은 9월 27일부터 10월6일까지 장장 9박 10일을 놀러 떠났고, ...... 

8개월 짜리 친손자 다온이와 지후를 우리 내외가, 아들네 집에서 보는 실정이었다.


9월 28일 금요일

며느리는 직장에 나가고, 집에는 아들과 다온이와 지후, 그리고 환자인 우리 내외가 덩치인 두 아이를 돌보았다.

올 3월에 출산한 다온이는 4.9kg으로 지금은 10kg에육박한다.

지후는 먹보라는 별명이 말해주 듯, 안으면 묵직하다.

마눌은 통증이 심해 절둑이며 고통을 호소한다.

........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은 대전으로 후송하기로 했었다.

함께 갈 수는 없다.

두 유아를 데리고 갈 수는 없기에, 9시 좀 넘어 지후를 데리고 아들이 대전으로 내려갔다.

오후 네 시경에 아들이 사돈댁을 모시고 올라왔었다.

그리고 나홀로 내 승용차로 홀로 내려왔었다.

마눌은 중환자였었다.


9월 29일 토요일

마눌은 운신하는데 완전 불구자였었다.

엉치인지 대퇴골인지가 무지 아픈가 보다.

화장실에 가는데도 어엉금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분속 10cm래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차에까지 데리고 가는데 30여분 태우는데 수 분 걸렸었고 내리는데도 .......

결국 큰병원에입원했었다.


입원하러 갔었을 때 에피소드 하나

지후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자고 있었고, .....

병원에 올라가 휠체어를 가지고 내려와, 마눌을 태우고 8층에 올라가 접수 수속하고 황급히 내려와 차에로 가 보니,

지후는 자고 있었다. 고마웠었다. 그리고 죄스럽기도 하고 ...... 

환자 다음이 엠알아이 촬영이어서 들어가는 것 보고, 쏜살처럼 차에로 다시 갔었더니 !!!!!

지후가 차 안의 시트에서 서서 창 밖을 간절히 보고 있지를 않는가!

할애비 오는 것을 보고 반기는 것이 '환희' 바로 그 자체였었다.

시트벨트를 매 줬었는데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내 알 수가 없다.

울지도 않고 내게 달겨드는 지후를 꼬옥 안고, 가슴으로는 찡한 죄스러움과 사랑으로 등을 다독여 줬었다..........

지후와 집식구

의사는 10월 4일까지 입원하라 했었는데, 집식구는 10월 2일 꼭두새벽에, 홀로 걸어서 집에 왔었다.

어제까지도 휠체어 탄 모습만 봤었는데 ....

결국 그 날 오후에 퇴원했었다.

지후 때문에 ....



       2018년 10월 13일 일요일


금산 고향에고구마 캐러 가다.

평시 같으면 마눌과 함께 갔겠으나, 나 홀로 갈 수밖에 없다.

마눌은 육체 운동은 삼가고 있다.

내 안 하던 설거지까지도 내가 하니까.

 

집안 조카님 김만수가 나에게 부쳐먹으라고 빌려준 땅에 세 두렁을 심었었다.

고구마 싹만 내가 사서 심었고, 밭갈기 김매기 물주기 같은 것은 한 번도 손까딱도 안 댔다.

심지어는 내가 산 고구마 싹이 불량였는지, 내 것만 금방 말라 죽었었다.

그런데 그 곳에 조카님이 다른 싹으로 심어주기까지 했으니, ...... 고마운 조카님이다.

 

우리의 세 두렁!



     10월 14일 토요일

10월 15일은 아버지 기일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출생이 같은 선친께서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다음 날 돌아가셨었다.

아마 40년이넘었겠구나.

제수 소고기를 사러 옥천에 갔다 오다.



      10월 15일 월요일

아벗님 기일

새벽에 역전 시장을 아내와 다녀옴

점심은 기우회 모임

기일이지만 모임에 참석하였다.

오남매였지만 달랑 막내네와 우리내외 넷이서만 모셨었다.

처음으로 부침개를 사서 하기로 했나 보다.

집식구의 불편한 몸으로 어려워 결정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미진했던지, 전을 두어 가지 집에서 더 부쳤었다.

며느리의 성의를 읽을 수 있어서 느꺼움이 전해왔었다.

제사 의식은 간편했지만 진심으로 절을 올렸다.

모처럼 며느리 둘도 처음부터 긑까지 절을 올렸다.

제사 후 넷이서 맛 있게 저녁을 했다.

옥천에서 사 온 소 등심 불고기로 안주하며, 제주를 모두 동내버렸었다.




         10월 17일~20일(3박 4일) 여행



아들이, 지 엄마 고생했다고 온천에 가서 푹 담그고 오라고 숙박권을 주었다.

나도 따라 나섰다.

나는 목욕 같은 건 별로다.

집식구는 목욕 매니어이기도 하지만 요번은 병 치료 여행이 맞겠다.

 아침 8시 경에 출발하여 영덕IC를 나와,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 죽도 등대까지 '해파랑길 21구간'을 걸었다.
집식구는 점심만 같이 하고 숙소로 먼저 갔었다.



 축산항으로 가면서, 죽도 등대

죽도산을 올라 내려, 축산항 버스 종점에 왔을 때는 네 시 반 남짓 됐었다.

5시의 시내버스를 타고 영해에 내려, 다시 평해 가는 버스로 환승했었고, 평해에서 18시 30분 버스로 백암온천에로 갔었다.

영덕 시내버스는 카드로 결제할 수 없었다.

내 대중교통 매니어로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인 듯싶다.

간혹 카드회사가 달라 결제 못한 적은 있어도 .....

주머니에는 5만원권 두 장과 천원 짜리 1장이었는데, 낭패였었다.

기사의 배려로 1000원으로 왔었다.




               10월 18일 수요일(해파랑길 27구간)

아침부터 비가 내렸었다.

집식구는 비가 오는데도 가려냐는 듯 눈치를 본다.

08:40,(온정)-평해(08;55~09:30)-울진의료원(울진 버스터미널, 10:15)

온정에서는 6명의 승객이나 탔는데, 울진행 버스 승객은 나 홀로다. 기성 터미널에 들어갔다가, 그냥 돌아나와 달린다.

밖은 빗방울이 한층 굵어져 있었다.

매화 축산농협께의 버스 승강장에서 한 여손님이 탔었다. 젊은 편의 중년여인이었다. 그 때 시간은 10:00 정각

노은의 한 승강장에서 한 할머니께서 타셨다. 열 시 7분.

1분이 채 안돼 호산교 직전에서 젊은 여인이 내리고, 남은 손님 둘은 터미널에서 내렸었다.

운전사 홀로 울진의료원으로 외롭게 떠났었다.

대형버스가 45분 달렸는데, 5천원도 못 버니!

비는 억수로 내리고 ......


  

울진터미널(10:15~?)-죽변항 입구(10:55)

부구까지 가는 버스가 죽변을 지나가는 게 있었다. 내가 탄 울진시내버스다. 부구까지 가려다 죽변항에서 내렸다.

죽변 등대까지 가는 것을 모르고 전에 내려 쌩고생을 더 했었다.

(죽도등대를 오르며)

죽변항에서의 내 우장 차림이 별났었다.

죽변항 어느 빌라 주차장에서 차렸었는데 .....

등산 티 위에 하얀 비닐 우의를,

그 위에 등산 점퍼를, 그 위에 방수막을 친 배낭,

그리고 그 위에 카키색 우장(사각형의 방수 천 가운데에 목이 들어갈 구멍이 뚫린 우장)을 내리꼈으니 ......

ㅎㅎㅎㅎ

이 모습을 마눌께 이야기 했더니 기막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울진원자력발전소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죽변 바로 위에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었다.

이번 해파랑길 27구간을 하면서 신울원자력이니 구부니 하는 지명을 처음 알았다.

이 원자력이 바다를 점하고 있어서, 이 구간의 해파랑길이 해파랑답지가 않았다고나 할까.

죽변등대를 지나 해파랑길을 잃고 헤맸던 고행이 27구간을 걸었던 의미라고 하겠다.

어느 보건소에 들러, 하얀 까운의 친절한 여직원의 설명으로 미궁을 헤쳐냈고, 지형과 상황을 알게 됐다.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해파랑길 27구간 종점 부구교



               10월 19일 금요일 맑음

점심을 후포에서 먹기로 했다.

열 시 넘어 숙소를 나와 7번국도를 달리다가 고래불해수욕장 광장으로 가는 해안길로 나와,

고래불대교를 건너, 영해 대진해수욕장을 거쳐 축산면 죽도의 현수탑까지 갔었다.

마눌의 다리가 온전치 못해 죽도 등대는 오르지 않고 현수교만 건넜다가 왔다.

첫날 21구간 해파랑길의 종점이 바로 이곳,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이기에 왔었는데 집식구는 큰 감동은 안 보였다.


동해안자전것길(해안도로)로 올라오며 파도도 보고,


후포어시장 어느 식당에 들러 소주 반주로 회를 먹은 후,

등기산에 올라 호연지기하며 술기를 날려 버렸었다.





                  10월 20일 토요일 맑음

오늘은 집으로 가는 날이다.

집식구가 설악산을 구경하자며 요구해왔었지만 내 심중은 시큰둥이었다.

때가 어느 때인가.

단풍철에 토요일이니 어떻게 한계령을 넘으며, 숙소는 얼마나 비싸겠는가.

찜질방이래도 좋으니 가자고 했었다.

모 콘도에 처남이 회원인데, 나도 이용할 수 있어서, 오늘 토요일을 대기로 신청해 놓은 상태이지만 하나의 시늉이다.

절대 해약자가 없을 것으로 믿기에다. 과연 연락이 당연히 없었고, 연락이 오드라도 안 갈 심산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변했다.

그 간 집사람의 심신이 고달펐고 여러 노고가 집혀서이다.


88번국도로, 평해로 나와 7번국도를 북행으로 달렸다.

근덕IC에서는 동해안고속도로를 달렸었고.



옥계휴게소에서 동해바다를 보고, 이제는 산으로 가자.






















양양TG를 나와 한계령을 오르려 44번국도를 올라탔다.

설악산 대청봉이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쓰고 저만치서 오뚝니 서 있었다.

감동이었다.

핸폰을 꺼내려는데, 차가 기우뚱 했었다.

마눌이 크게 경고하며, 자기가 대청봉을 찍어댔었다.


오색 몇km쯤부터 차가 밀린다.

아니 그냥 서 있다.

교통을 일방통행으로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수 분을 보내다, 올려 보내고, 다시 내려보내기도 하고 ........

         


한계령휴게소에 들어왔으나 자리가 없다.

어쩌랴, 그냥 나갈 수밖에.

마눌만 남기고, 920m 한계령을 넘어 내려, 2~3km를 가, 어느 굽이 넓은 공간에 주차하고,

홀로 되 올라 한계령에로 갔었다.


뒤돌아 보니, 저만치에서 점봉산이위엄 있게 버티고 있었다.


한계령 위에는 단풍이 한물 갔었다.

  

설악로 44번국도가 홍천IC까지 연결되었다.

55번고속도로 올라 원주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영동소속돌로로, ......

도로 안내판에 50번고속도는 주황색으로, 45번과 35번고속도는 녹색이었다.

어느 분기점에서 충주로 빠졌었는데, 아이고! ..... 영동고속도보다 더 막혔었다.

........

하도 막혀 죽암휴게소로 들어가 저녁을 하고 나오니, 경부고속도가 숨통이 트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