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홍기 시집을 펴며

양각산 2012. 6. 5. 12:42

 요즘 나는 병환 중이다.

허리 고장에 엉치가 아파 매일 병원에 들른다.

오늘(6. 4.)도 서대전네거리에  있는 정형외과 병원으로 물리치료 받으러 갔다.

이 병원에 내 대학동기가 주차관리를 한다는 것을 작년엔가에 우연히 지나다가 만나 알았고, 금년 초에도 이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들었었다.

 

 5월 27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병원을 들렀지만 경비초소에는 그가 계속 없고, 빈 공간만 어둑하고 휑하기만 했었다.

어느 하루에는 궁거워, 물리실 치료 접수처에 일하는 여자에게 물었다, 여기서 주차일 하는 이 그만 두셨나를.

그녀 왈 오전만 근무하고 마는 듯하던데요 한다.

오늘은 집 수리를 하려고, 이삿짐을 싸는 날이다.

여덟시에 오기로 한 이사짐 센터가, 훨씬 이른 시간부터 와 설친다.

11시가 되도록 짐을 싸고, 싣고 난리를 친다. 환자인 나는 슬며시, 마누라에게 결재를 올린다. 나 물리치료하러 갈거야. 한 마디로 그래요 한다.

 

 이리하여 12시가 안 된 즈음에 병원에 갔고, 주차경비실을 들여다 봤다.

마침 그 안에 그(장홍기)가 있었다.

경비실을 밖에서 보면, 체구가 큰 사람은 궁둥이 돌리기가 어렵겠다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마주 앉을 정도는 되고, 에어컨이 있어 매우 시원했다. 

그 특유의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여전히 묻어 있었다. 앉을 자리가 하나인데 내게 내주지만 어디 내가 감히 앉으랴.

장홍기씨는 나보다 겨우 한 살 위지만 대학부터 장 형으로 군림했었다.

내가 대학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는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을 병장 3년 만기로 복역한 후에였었다.

나는 병약해서 군대도 못 간 위인이고, 시골뜨기 순됭이였으니 감히 그를 어떻게 대적했으랴.

그러나 그는 포용력이 많았고, 겸손하고, 친절했었다.

 

 제번하고, 그는 시집을 하나 냈다 했다.

1000부를 찍었는데, 동료들이 다 소화해 주었단다.

내가 그에게 부탁해 한 권을 손에 넣었으니, "나는 바람이고 싶다" 다.

앞 표지에는 그의 시 " 기다림의 소묘" 全文이 실려 있었다.

 

 황량한 넓은 벌판

 기찻길 둑방 위

 외로운 간이역

 대합실 형광등 불빛

 소르르 졸고

 나무의자에 쪼그려 앉아

 너를 기다리는

 나는 졸음이 더 무겁다.

 

 급행열차 지나가고

 특급열차 지나가면

 나는 졸음을 털고

 고개를 들어

 표 받는 이도 없고

 나오는 이도 없는

 출찰구를 계속 바라본다.              -기다림의 소묘-

 

 

 간이역은 지금은 없어져가는 단어다.

 옛적에도 간이역에서는 급행열차도 특급열차도 서지를 않았다.

 간이역에서는 사람이 내리지 않는다.

 사람이 내리지 않는 곳에 누가 오겠는가

 ............

 그래도 계속 기다리는 기다림

 인간 장홍기의 모습인가

 그의 말처럼 '실패의 연속'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장 형!

 그 기다림이 이루어지길 .......

 나 양각산은 소원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 면에다가  장홍기씨의 옛날을 회억하며, 나의 이야기도 곁들여야겠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