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時享), 시제(時祭), 시사(時祀)라는 제향 행사가 있는데 전통적으로 음력 시월 상달에 모신다.
우리 집안에서도 이 의식이 해마다 행해지고 있는데, 두 차례로 지낸다.
첫 번은 음력으로 10월 6일이고, 다음은 10월 10일이다.
우리의 12대 할아버지께서는 경상도 산청에서 사시다가 임진왜란 때 이곳 전라도 무주군 부남면 한티(大峙-대치)마을로 피란을 오셨었나 본다.
그리고 결국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주욱 살았고, 5대조부께서는 나의 고향 금산군 부리면 신촌리 안땀(내장, 내마테)으로 이주하셔서 오늘에 이르게 됐었나 본다.
12대 조부님이 河字 공이요, 그 분의 선친이 서경(瑞慶) 할아버지신데, 경상도 산청에 묘소가 있었는데 20여 년 전에 한티마을로 모셔왔었다.
6일에 12대 조부님과 13대 조부님 시제를 함께 모시고, 그 날 오후에 11, 10, 9대 조부님의 시향을 모신다. 아마 2대에 걸쳐 외아들이었엇나 본다.
9대에서 이제 부남 일가와 금산 일가로 나뉨을 보면 형제를 두셨었고, 따라서 8대조부터는 이 무주 일가와 시향을 나누게 된다.
저작년에 한티에 있던 8, 7, 6대조를 우리 내맡 5대조부 묘소로 모셔와 墓園을 조성하고 시제를 모시는 날이 10월 10일이다.
음력으로 10월 6일이 양력으로는 11월 15일이었다.
그 날 시젯길에 몇 사진을 올린다.
대티마을을 우리는 늘 한티라고 불렀었다. 행정명으로는 대유리라 불린다.(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이날 오후의 시향에는 네 명밖에 참석을 안했다.
제물은 많은데 제물을 들고 산 중허리에 있는 묘소까지 갈 수가 없어, 산 기슭의 평지에서 묘소 방향으로 진설하여 제를 모셨었는데, 마음은 편찮았다.
젊은이 둘은 정상이나 나와 다른 한 분은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넷은 희한하게도 대가 모두 달랐었으니, 한 어른은 坤자 항렬이고 나는 鎬자 항렬, 다음은 洙자, 그 다음은 東자 항렬이었으니 넷이지만 4대를 대표했다.
4대가 모여 제를 올렸으니 조상께서는 흐뭇해 하셨을려나.....
오는 길에 秀坤님을 밤소(율소)마을에 모셔다 드리고 금강 상류의 비단강길인가 벼룻길인가를 차로 오면서 풍광을 담아 봤었다. 담아온 사진을 그냥 묵히긴 싫고
여기에 몰래 숨겨둔다.
2011년 1월 2일에 잠겼던 사진을 딴다.
좀은 시향 의식이 초라한 듯해서 부끄러워서였지만, 사실을 숨긴다고 숨겨지겠는가.
그리고 오늘 현실에서 이만해도 대단한 모심이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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