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8. 말복에 무지무지 더웠던 날에
옛날에 방우리 사람들이 방우리벼룻길을 타고, 서면 나룻터로 갔을 법하던 벼랑길을 넘어 방우리에 갔었다.
방우리 벼랑길이 있는 저 벼루의 능선을 지나고,
저기 물가의 왼쪽 밭에 방우리 마을로 가는 길이 있었다
드디어 방우리 마을에 이르고....
가죽나무(참죽)가 많은 방우리 마을....
이 고샅으로 들어와
이 집 마당을 거쳐 대문으로 빠져 나왔었다
방우리 이장 댁에 들러 저 수도물을 병에 채우고......
몇 년 전에 방우리나루를 배로 건네주셨던 그 분 댁이구나!
방우리 마을을 빠져나오며 뒤돌아 보니
수숫대가 가로수를 연상한다
마을 앞 금강과 전원 풍경
방우리 마을 대문
방우리는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방우리(원방우리), 농원, 지렛여울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렛여울 마을은 없어지고 지렛여울이라는 여울만 남았다. 어쩌면 지렛여울이라는 마을은 지레가 아니었을까?
한 친구를 오래도록 만나왔었는데, 그는 방우리 사람으로만 알아왔었다. 어제(2010. 8.20.) 그와 모임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방우리 얘기를 내가
꺼냈고, 출신지를 물었고, 그러다가 그가 뜻밖에도 지렛여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9살까지 살다가 우리 고향으로 이사해 살았었는데, 그 전에는 열여덟 가구가 살았었고, 그가 이사 나올 70년대 때만도 아홉 가구가 살았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가구도 살지 않는다 했다. 마을로는 명을 다했단다. 그의 집터와 전답이 많지는 않지만 있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들어가 살고 싶다 했었다.
어재리에서 양각산재를 임도를 넘으면 그 골짜기가 우렝이골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렛여울 사람들이 물을 안 건너고 금산 방향으로 드나들던 길도 알았다.
수통골 한박골(한밭골, 한바우골)로 나오거나, 우렝이골을 지나 양각산을 돌아넘어 압수골로 통행하기도 했었나 본다.
방우리는 금산군 부리면 땅이지만 도로망이 없다. 그래서 방우리를 가려면 무주읍을 지나 앞섬인가로 드나들어야 한다.
금산과는 모든 면에서 외떨어져 소외되고 불편하다. 때문에 방우리 주민들이 무주에 편입해달라고 아우성을 쳤기도 했었는데..... 충남 쪽에서 동의하지 않는가
본다.
그래도 지금은 멀리라도 자동차로 돌아갈 수나 있지, 옛날엔 금산으로 나오기가 무척 힘드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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