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다 잃었다.

양각산 2009. 7. 1. 12:29

 2009년 6월 25일 오전 10시가 될까말까에 대기로보터 전화를 받았었다. 대기는 고향 중고 모임 총무로서 그 전날에도 만났었다.

왜 전화했냐니까 좋지않은 일로 전화 한단다. 상철이가 저 세상으로 갔단다.

상철이는 뇌암으로 투병하던 성격이 아쌀한 친구로 6개월 전만 해도 함께 신나게 소주를 마셨던 친구다.

 일생이가 금산농협조합장에 출마하여 운동하던 3월 어느 날에 진경이와 함께 충대병원에 갔을 때 말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눈물만 주루룩 흘리던 그 친구....  

일생이의 선거 사무장으로 열심이었던 상철이었는데, 병마로 못하고.... 결국 그러다가  저승으로...

충격이었다.

 그 날 저녁에 금산의 장례예식장에 가니 그 넓은 주차장에 차 댈 데가 없었다. 한 바퀴 휘잉 둘러 나와 도로 변에 바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살아서 처신을 잘했구나 싶었다. 만약 내가 오늘 갑자기 죽는다면 몇 사람이나 와 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상철이 영정 앞에 처음 섰을 때는 정말 눈물이 나올 지경었다.

 접대실에도 온통 사람들로 시끌벅쩍하다. 아는 이도 제법 많다. 살아있는 놈들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어떻게 보면 잔칫집 같기도 하다.

 야! 우리 이렇게 해도 되니? 이거 잔칫집처럼 뭔가 이상하지 않니? 했다 일생이에게.

일생이는 상철이와 둘도 없는 단짝 친구라 할 수 있는 친한 사이였다. 농협조합장 선거 총책이자 사무장이었었으니...

조합장에 당선된 날 대학병원에로 달려 갔을 정도이니 둘의 사이를 알고도 남으며 오늘 이 상례의 호상이기도 한 일생이에게...

 야! 죽은 이는 죽은 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야. 좋은 데 갔으니 괜찮아! 나보다도 친한 놈도 저러니 어쩌면 대범하다고나 할까!

 

내일 일찍 어데 갈 데가 있어 오늘 왔고 좀 일찍 여기를 떠나려 했다.

밤 11시도 넘어, 가려고 신발을 찾으니 없다.

소주 한 잔 하고 다시와 찾아도 없다. 참 낭패다.

나중에는 일생이에게 그 얘길하니 어떤 나쁜놈이 신발을 다 훔쳐 가! 한다. 야 내 신발이 좋은 게 아냐. 아마 모르고 바꿔 신고 갔겠지 했었다.

신발장과 바닥엔 구두 천지다. 살피고 또 찾아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집에 왔었다.

 나의 맨 아래 끝 발끝을 장식하는 구두를 잃어 버렸다.

 

 26일 6월의 네번째 금요일이다.

이 날은 신유성산악회 정기 산행일이다. 홍천에 있는 팔봉산엘 갔다 왔다. 이 산악회에서는 갈 때나 올 때에 가무 음주가 있는 산악회다.

친구의 상중이라 갈 때에는 좀 자중을 했다. 술을 권해도 전혀 입에도 안 됐지만 나중에는 아니 먹을 수 없기에 좀 마셨다.

 팔봉산 산행이다. 정 코스로 완전하게 한 이는 나 혼자뿐이다.

산악대장이 이끄는 팀들도 돌아가는 길을 택했고, 해산굴을 통과한 이는 오직 나뿐이었다.

우리 일행인 태권이와 규명이는 삼봉만 하고 하산했다. 해산굴을 통과하고 4봉을 올라 조망 후에 점심을 먹으며 태권이에게 전화하니 하산하는 중이란다.

그들은 홍천강에 발 담그고 담소를 하며 노작거릴 것이다.

 8봉을 찍고 팔봉산 맨 아래 기슭을 밟았는데, 그 기슭길이 홍천강을 따라서 역류한다고나 할까.

팔봉산 시작점까지 걸어가면 홍천교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야 주차장에 이른다.

그러나 나는 그 다리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서 홍천강 여울을 등산화도 벗지 않고 건너버렸다. 참 개운하고 기분이 통쾌했다.

 태권이와 규명이는 술자리를 벌여 놨나 보다. 빨리 오라 재촉한다.

주차장께에 있는 매점 야외 자리에 酒席이 펼쳐져 있었다. 춘화씨도 함께 있었다.

더덕주인가 하는 막걸리가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후래자 삼 배라고들 하며 권하기에 사양하지 않았다.

 

 네 시간에 걸쳐서 팔봉산에 왔고, 팔봉산에서는 세 시간 남짓 있다가, 다시 또 네 시간 걸려 출발지 유성으로 간다.

 3시 50분에 떠난 버스는 8시 경에 유성에 도착했다.

 여부회장인 김영순님이 저녁을 쏜단다. 그가 경영하는 유성호텔 뒤편에 있는 청진동해장국에서 40여명 모두에게 말이다. 

저녁만이 아니고 소주도 낸다. 우리 셋이는 거의 다 갈 때까지 약주를 즐겼다. 공짜니까! 아니다. 분위기가 좋아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감있는 전인근 씨도 저쪽에서 여자들하고만 맥주 판이다.

노래도 잘 하고, 체력도 임꺽정 같아 보였으나 인상은 푸근해 보인다. 껌은 색안경을 쓰고 너무 노래를 잘 불러서 일어난 반감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밑이려니 했는데, 까보니 나보다 한 살 위다.

체력 관리를 잘한 그에게 경의를 표했었고 합류하여 술을 마시니 분위기는 도도해질 대로 도도해졌다.  ...... 많이들 마셨다.

 

 태권이와 규명이와 우리 셋은 송은희 닮은 순예와 둔산동 꼬치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희라는 이가  하는 호프& 비어집이다.

안주가 저렴하여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집이다. 태권이가 제법 맥주를 많아 샀었다.   .......

 

 규명이와 나는 서대전이 집이다. 술자리가 끝날 때는 항상 같이 가는 편이다.

그리고 다섯 번에 네 번은 술을 마시고 헤어진다.

그네 아파트 단지에 있는 치킨&호프집에를 이날도 또 갔엇다. 거기서 치킨 반 마리에 소주를 샀고, 15000원을 계산한 기억은 난다.  

.........

 

 아직도 등산 가방에 산행 때 입었던 긴 팔 셔츠였다. 손등이 가렵고 목덜미도 뭐가 무는 것 같았다.

눈을 떠 보니!!!! 이게 웬걸 하늘 위로 아파트가 마천루처럼 버티고 있다.

깜짝 놀라 일어나 시계를 보니 네 시가 다 됐다. 현재 위치가 어데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진행하니 아파트 펜스와 담장이 길을 막는다. 돌아서 나와 이리 저리 하다가, 큰길로 나왔고, 저만치에 충대병원 네온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겨우 길을 찾아 집에 왔다.

그러니까 6월 27일에야 집엘 들어온 것이었다.

 

 6월 28일 일요일

그제 내가 우술산 성주로 임명 받았다.

우술산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다. 돌까마귀님께 우술성의 위치를 물어 대한통운 뒷편에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회덕향교 뒤라고도 덧붙여 말해준다. 그는 마산동산성의 성주로 함께 임명장을 받았었다.

 성주로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겠다고 해서 임명을 받았으니 오늘 가 봐야겠다 했다.

본디 일정은 돌까마귀님의 대청호에 따라가려  했으나  음주 후유증으로 감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느지막히 우술성을 찾아 나섰다.

도시락은 없었고, 집식구가 도시락을 싸주랴 하는데 퉁명스럽게 됐다고 했다. 배낭에 물만 넣고, 수건도 챙겼다.

모자를 찾으니 없다. 모자 두는 데를 찾아도 없고 안방을 뒤져도 없다. 욕탕에 어저께 벗어놓은 옷가지에도 없다. 아들과 딸에게 물어도 못 봤단다.

 그제서야 나는 알아차렷다. 27일 날 새벽에, 모기가 무지 나를 뜯어먹던 날 어느 아파트 뒷골목에서 정신을 놓고 자다가 깨서 왔을 때 놓고 왔음을.

 

 며칠 사이에 큰일을 겪었고,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의 소중한 물건을 잃었으니 세상의 것을 다 잃은 것이 아닌가!

비록 닳은 구두와 값싼 모자이지만 말이다.

 너무 과장했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두 번째로 정신을 잃게 마셨던 사고였었다.

 정말 자중해야겠고,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게, 배려를 당부한다. 술을 할 때는, 2차는 몰라도 3차 가자는 유혹은 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