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생일에 있었던 일

양각산 2009. 5. 1. 16:55

 

 2009년 4월 30일은 음력 4월 6일로 내 생일이었다.

 이 날 집식구는 모 모임에 객원으로 끼어 남해 보리암엔가를 갔었다. 자꾸 신경쓰는 아내를 염려 말고 도시락만 챙겨달라고 말했지만 좀은 신경 쓰이는 눈치다.

 아침에 대충 식사를 아니 생일상을 홀로 먹는다. 미역국에 며칠 전에 뜯어온 취나물 등 식물성 반찬투성이다. 함께 먹자니 아침과 점심 등

모두다 잘 먹는단다. 돌아오는 길에 삼천포에 들러 회를 먹기도 한다며 그 때 회도 사오겠단다. 저녁에 애들도 다 오고 생일 잔치가 베풀어지나 본다.

 나는 산에서 생일을 보내기로 마음 먹고 챙겨준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물도 챙기며, 날씨가 덥겠다는 예보에 어제 계룡산 등산에 갔다가 남겨온 작은 병의 오디물도

챙겨 넣었다.

 

 집식구 계원 손미연씨는 근 10분 전에 아파트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었고, 준비에 바쁜 마눌은 7시 넘어서서야 비로소 현관문을 나섰다.

충무체육관에 7시 10분까지 오랬는데 겨우 그 시간에 맞춘다.

나는 그들을 그 곳에 내려놓고, 민재로 내달렸었다. 장령지맥(민재-신안사고개) 산행을 위해서.....

 민재에 이르러 차를 어느 공장 주차장 공간에 몰래 바치고 들머리를 찾아 산행에 나선다.

서대산에서 국사봉으로 흐르는 능선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국사봉 좀 지나서 신안사쪽으로 동진하는 산줄기 장령지맥이 오늘 산길이다.

 601번지방도 가에 있는 민재에서 서대산 7부 능선을 쳐오르니 좀전의 추위는 벌써 날라갔고 땀이 등에서 설설 샌다. 능선 직전의 봉에서

서대산을 조망하고 가방을 헤집고 작은 병을 찾아내어 한 모금 마신다.

 그러나, 그러나! 어제 마셨던 그 달디 단 오딧물이 아니었다. 참기름병이었다. 느끼하고 상쾌하지 않은 그 맛! 하하하!!!

오늘 물이 많이 필요할 텐데 헛물을 가져와 낭패를 당하겠다 하면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겨서 참기름 냄새처럼 꼬소하기까지 했다.

 

 서대산 능선에 닿아 서대산쪽 정상과 장군바위를 우러르고, 뒤돌아 남쪽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신안사에 2시는 닿아야 하기에서다.

오른쪽 조정리 마을도 보고, 지난 번 장령지맥을 훑어 보기도 하고 금성산, 대둔산, 그 뒤 천등산도 보고, 진악산도 살핀다.

반대로는 장령지맥의 최고봉인 장령산과 대성산에서 천태산까지도 한눈으로 다 보인다.

 왼쪽 가까이는 보광리로 들어오는 도로가 반듯이 지맥과 나란하고, 보광리 마을이 부티가 난다.

대성산에서 산안마을로 내려오는 임도도 가끼이 보인다. 간혹 알바를 했지만 구름나그네나 강산에 표지가 있어 진행이 순조롭다.

전망 좋은 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볕 좋은 묫벌에서도 또 한 모금, 지맥 능선을 온통 홀라당 벗긴 곳에서는 가슴 아파하고, 철쭉 고운 산길에

감격도 하며 방화봉에 이르렀다.

 물론 물도 마셔가며 비들목재 바로 건넌봉이 국사봉이겠지 하면서도  국사봉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방화봉에서 비들목재 내림길에 고생도 많이 했다.

비탈이 심하고 암벽도 있고, 길이 희미하여 놓쳤다가 다시 찾고, 또 놓쳤다 다시 찾기를 여러 번 하여 간신히 내려왔다.

많이 보광리쪽 도로로 치우쳐 내려왔지만 양호한 하산이다.

 

 비들목재는 참 운치가 있는 곳이다.

정자가 있고, 꽃동산 같은 아름다운 공간과 시원한 조망이 있다.

군북면 두두리에서 불어오는 서풍이 있고 산안마을 상곡리에서는 대성산 쪽 동풍이 불어오니 아니 시원할 수가 없다.

정자에 오르니 신선이 된 듯하다. 물병을 꺼내 한껏 마신다. 참 맛있다.

 

 비들목재에서 국사봉을 오르려면 땀께나 흘려야 한다. 정말 너무 가팔라서 입에 침이 마르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좀 위로 되는 것은 철쭉꽃들이다. 색 옅은 핑크빛 철쭉인데 지천으로 양 길에 깔렸다고나 할까!

간혹 가다 서대산과 장군바위가 숲 끝에 살짝 보이나, 사진으로 잡기엔 모자라고, 장령산 대성산도 잎 사이로만 선명하다.

 국사봉은 두 번째봉으로 십자표지석이 있는 봉으로 조망이 비교적 좋다.

사위를 흡족히 보고, 좁은 공간이지만 자리에 철푸덕 앉아 물병을 꺼낸다.

아니 그런데 없다, 물병이! 참기름병만 신경질 나게 있다.

아까 비들목재 정자에서 마시고 거기에다 놓고 그냥 왔나보다. 절망이다.

이 국사봉 오르기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올라왔으니 얼마나 목마르겠는가. 내려가 가져오기엔 너무 왔다.

신안사에 가서야 물맛을 볼 텐데, 갑자기 더 갈증이 난다.

 

 국사봉을 찍고 내려 오는데 앞길이 캄캄하다.

 밥은 어떻게 먹으며, 또 갈증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등산화 끈은 왜 자꾸 풀어지나!

귀찮아서 내려가 매려하며 그냥 가다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

낙엽이 쌓였고, 나무 등걸에 채이면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부레이크가 걸리면서 한 바퀴를 굴러 자빠졌다.

등에 배낭 소리가 요란하며 머리는 땅에 닿지 않았다. 등 바로 밑에는 바윗덩어리 암반이었다.

생일날 변고를 당할 뻔했다. 그리고 웃었다. 천만다행이라고 하며. 

 신안사고개에 2시가 좀 못 돼 도착했다.

물론 점심은 먹었는데 물없는 밥은 못 먹겠다.

다행이 쉰 김치가 있어 그런 대로 좋았다.

갈증이 심해 김치 국물을 마시려 찬그릇을 기울여 마시는데 김치가 코까지 흘러 내려 코가 고추가루에 범벅이 됐을 게다.

누가 봤으면 웃었을 테지만, 밥 먹기가 끝나서야 닦았다.

 

신안사 경내에 들어가 맨처음 찾은 곳이 우물이었다. 극락전 옆에 수도시설이 있었고 꼭지를 틀으니 물이 콸콸 나왔다.

잘 마셨다. 물이 이처럼 맛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그리고 두어 바가지는 먹겠지 했는데 그렇게 많이는 들어가지 않음도 알았다.

 금산에서 2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아직 안 왔다.

이 버스가 신안사까지 안 오면 어쩌나 하고 걸어 내려 갔다.

 이 신안사부터 제원면 대산리 마을 앞까지의 계곡을 신안골이라 부른다. 또 제원에서 이 신안사까지의 도로를 신안로라 칭한다.

신안사는 한자로 身安寺로 쓰고 그 유래는 신라 때 모 왕이 여기서 거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였었다는 데서 유래한단다.

 화원동마을 들머리 쯤에 왔을 때 버스가 멈춘다. 딱 한 분의 젊은 승객을 다 내려 놓는데 다가가, 운전사에가 물으니,

신안사에서 2시 45분에 발차한단다.

 홀로 내려와 여기저기 살피며, 신안교 다리에 이르고, 그 밑을 보니 물이 제법 깨끗하다. 세수와 머리를 살짝 감고 내려오다가

푸푸랜드(?)인가로 들어가는 다리쯤에서 버스를 탄다. 아마 2시 50분였을 것이다. 구억리 601번지방도에 내리니 세시다.

 

 이제 601번지방도를 따라 민재까지 걸어가야 한다.

날씨는 바람이 불어 시원하지만 햇빛은 따가울 정도다. 벚나무 가로수가 좀더 컷으면 싶다. 가로수 그늘이 좀 아쉽다.

구상리까지 걸었다. 

걷는 길에 큰 공장도 지나고, 그 회사 노조의 투쟁 깃발을 보며, 문구가 ㅇㅇㅇ새끼 등 험악한 말투에 마음이 심란하다.

구생이마을 앞 둥구나무 밑에 의자가 대여섯 개가 있다.

앉아봤다. 너무 편하다. 바람이 솔솔 불고 마을도 아름답다.

교회도 있고, 어느 집 대문엔 금줄을 쳤다가 한쪽으로 제켜 놓았다. 아마 이 집에 아들이나 딸을 낳는 경사가 있었나 보다.

마을 사람이 힐끗 보고 가기도 한다.

 에이 또 걸어 가자.

일어났으나 발걸음이 무겁다. 다시 앉는다.

 금산에서 3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결심한다. 그 버스는 제원을 거쳐 와 군북면 소재지 두두리까지만 간다.

그 두두리는 여기서 3.3km라 써 있다.

 좀 후 버스를 타고, 천을리를 지나 금방 두두리에 도착한다.

 내려서 슈퍼에 들러 물 한 병을 사서 마신다. 바나나우유와 민우유를 함께 마시니 그제서야 갈증이 없어진다.

 민재로 향하다가 아주머니 떼가 있어 걸리는 시간을 물으니 다양하다.

1시간은 걸린다느니, 아냐 40분이면 갈 수도 있단다.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는 20분이면 갈 걸 하는 분도 있으니!

 대충 30분 거리려니 하고 걸으니 동편리가 나오고, 다음에 조정리가 나온다.

조정리 맨끝이 민재로 이 민재 너머는 군북면이 아니고 추부면 서대리다.

 내가 오늘 걸은 구간 서대 능선까지가 군북면과 추부면의 面界가 된다. 힘들지만 즐거움을 누리며 민재에 이르렀다.

 

 2009년 내 생일날 별일들을 겪었다.

참기름 사건, 그 소중한 물병을 잃고 물없이 산행한 일, 나무등걸에 걸려 발라당 넘어진 사건, 발이 아프도록 걸은 일 등.

 저녁에 생일연을 베풀어 준다고 해 놓고 마누라는 거의 아홉 시에 들어온다.

하도 배가 고파 애들이 먹다 남긴 피자 한 조각과 스파게티로 배를 달랬다.

 삼천포에서 회를 사왔는데 그 회가 비릿하기만 했다. 애들은 맜있는 듯 술을 반주로 늦도록 담소하며 화기애애하다.

 나는 피곤하다며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식구들의 유쾌한 말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기만했다.

  아마 마눌에게 불만이 많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