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21. 11. 14. 일요일 음력 10. 10.
일지 : 전 날 형님댁에 오다.
식사 후 9시에 형님 댁(안담길 9)을 나오다.
웃담(윗담) 고샅을 지나, 날망집 순환네 집을 지나 고갯마루를 오른다.
그 고개 마루를 사람들은 '막은재'라 불러온다.
* 막은재의 유래
옛날에 무주 부사를 지낸 용인 이씨 한 분이 이 고개 막은재 날망에 앉아,
금강 안쪽으로 보이는 땅을 모두 자기 땅으로 지정하고, 마을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길을 막았댔다.
그 재 좌우가 모두 자기 땅이고, 왼쪽은 자기네 조상 묘가 있기에, 다니던 길을 통제했나 본다.
옛날의 관료들의 행태를 볼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막은재를 내리면 농바우길로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오른쪽은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이 골을 쇠똥골이라 부른다.
왼쪽은 집너머골이라 부르고, .......
농바우길은 양각산기맥의 마루금으로 난 길이다. 쇠똥골 다음 골짜기는 상골이다.
이 골은 우리 땅이 제법 있었다. 나와 관련이 있는 추억도 많다.
이 상골로 금강을 향해 내리면, 선바우골 물과 합수점이 있고, 이쯤에 부모님 묘소와
형수님 산소가 있다.
여기를 사람들은 물양지라 부른다.
꽃산이라 불러온 이 산 기슭이 우리 밭이고 묘원이다.
금강의 물양지 여울과 강 건너 깃대산과 갈선산이 지호지간에 있기도 하고 .......
성묘를 마치고 물양지 은가람마을이던가 하는 전원마을로 올라섰다.
아홉 시에 나와 막은재, 농바우길을 거쳐, 상골로 내려 물양지 산소에 들러 성묘하고,
꽃산 기슭의 전원마을을 거쳐, 물양지골 농로를 따라 올라 내면수연구소 정문이 있는 농바우길에 도착했었다.
섬바우 묘소에 이르렀을 때는 열시였었다.
10여 명의 집안 사람들이 시제를 올리고 음복하고 정담을 나눈 후 자리를 떴는데 거의 열두 시였었다.
차는 아니 타고, 이제껏 내 두 발로 걸어다닌다.
여기 시제가 끝나면 세 집안으로 갈리는데, 막내인 우리는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시제를 모셔야 한다.
달랑 셋이다.
잘나서 대처에 나가있는 이들은 아니 오고, 근교에 사시는 이는 힘이 딸려 못 오시고, .......
양각산기맥 마루금으로 나있는 농바우길을 다시 걸어 간다.
둘은 차로 제물을 싣고 가고, 음복을 제법 한 양각산은 다시 걷기를 한다.
음풍농월은 아니지만 사방이 풍류스러웠었다.
공동묘지터, 물양지로 내리는 길 입구를 지나면, 오른쪽 큰 골이 있는데 함무골(할미골)이고,
그 오른쪽은 건절미골로 내면수연구소가 건설되고 있다.
그리고 서낭댕이를 넘어돌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농바우길로 어재리(느재마을)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는 길은 압수길로 압수골마을로 가는 약각산 마루금 길이다.
여기에서 조부와 증조부 시제를 모시고 돌아왔다.
작은거리때골 양지바른 곳, 명당일 듯한 곳이다.
올 때는 작은 봉송이지만 짐이 있어서 아우의 차를 타고 왔었다.
만 보는 아마 못 채웠을 듯싶었다.
그러나 걷는 내내 매사가 느꺼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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