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장산 둘레길 제2구간과 성왕의 길
언제 : 2015. 2. 21. 토요일
날씨 : 비(가랑비가 종일 내리다)
누구랑 : 돌까마귀 신샘 오투 소나무님과 양각산이
도상거리 및 소요시간 : 약 18km, 6시간
산행 노정 : 충북 옥천군 군북면사무소(09:03~40)-노란리-임도-다리골-월전리-오동리- 환촌-하동리 마고실-동오리 장중1교-사양리 서성골-마랑골-은행리-
진골-뱀골-논골-닭재-계현천(?)-송촌마을-공주말-대전천변 右岸-대전천 징검다리-17번국도 지하통로-농로 포장도로-낭월동시내버스 차고지-
남대전IC 진입로-구도교-구도리버스 승강장(15:45)
'오늘 걸은 길의 해설'
충북 옥천군 군북면사무소가 있는 이백리에서 시작된 길은 노란리 골짜기를 타고 식장산 동릉을 넘어 월전리로 내려와 1450여년전 백제의 성왕이 웅진성(공주)을 떠나 계현(닭재)을 넘어 왔던 길을 따라
대전시 동구 삼괴동의 덕산마을까지 이어진다.
삼국사기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신라의 배신으로 나제동맹이 깨어진 서기 554년, 백제 성왕이 고시산군(옥천)에 성을 쌓기위해 나가 있는 왕자 여창(후일 위덕왕)을 위문하기 위해 닭재(鷄峴)를
넘어 구천(서화천)을 따라 내려 오다가 신라의 매복군에게 납치되어 죽음을 당한다. 성왕이 잡혀 죽었다는 구천의 위치를 찾아보면 구진벼루라는 지명이 금산 추부에서 흘러 내려온 서화천이 옥천과
합류하기 전에 크게 휘돌아 나가는 월전리 군전마을의 옛 이름으로 전해 오며 구진벼루(구천을 건너는 벼랑,개狗,나루津,벼루=벼랑)가 한자로 표기되며 변했을 것으로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신라군은 금산 추부의 추풍천이 옥천으로 내려오며 소욱천으로 불리다가 서대산과 장령산 골짜기를 내려온 금천과 만나 서화천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평리(군서면 소재지)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우연히 호위 기병 50명만 데리고 닭재를 넘어 구천(서화천)을 따라 내려오는 성왕을 사로잡아 구진벼루에서 백제노비 출신의 신라 군관 고도로 하여금 목을 배게 한것으로 생각된다.
곤룡재 아래에 있는 사양리의 진골과 식장산 독수리봉 능선의 남녘 오동리의 무중골, 하동리의 마곡실(말골)등의 지명도 김유신의 아버지 김무력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신라군을 정비하여
관산성을 공격하였다는 전설과 일맥 통하는 점이 있는듯 하다.
서화천(구천)을 가운데 두고 동남쪽으로 서산성,삼양리토성,삼정산성(관산성),룡봉성,동평성,마성산성이 천,성,장,마 줄기를 따라 늘어서 있고 맞은편 북서쪽 식장산 줄기에는 말동산
(성치산성),곤룡재 보루,동오리고개(사양리산성),독수리봉 보루,510봉 보루,할애비산성(511봉),할미산성(노고산성)에 이어 경부선 철길과 경부고속도로를 넘어 황골의 고리산 제1보루부터
제6보루(동봉)까지 이어져 있으니 신라,백제의 땅따먹기 전쟁이 아주 치열했던 곳이다.
금산군 추부면 마전을 지나 요광원에서 국도 17호선과 갈라지는 국도37호선이 옥천의 서정교차로를 지나 보은까지 새로 생기자 옛 길은 길이름이 성왕로로 바뀌었다. -돌까마귀님 카페에서-
소나무님이 소나무와
문창동 석오(돌까마귀)공작소에서 돌까마귀님께서 뒤풀이를 베풀었다.
손수 조리한 동태찌개와 고향에서 날러온 제수 음식을 안주로 막걸리 큰놈 세 병과 소주 한 병을 비웠었다.
왕눈이님도 안주를 가져왔었는데 무언지 기억이 안 난다.
많이 마셨었나 싶다.
돌까마귀님, 좋은 산행 안내와 뒤풀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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