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山城)

[스크랩] 연축동산성(連丑洞山城, 우술성[雨述城])

양각산 2009. 7. 5. 15:34

연축동산성(連丑洞山城, 우술성[雨述城])

 

* 유적명 : 연축동산성(連丑洞山城, 우술성[雨述城])

* 위 치 :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邑內洞) 산 19-1 수척골

* 시 대 : 백제시대

* 소유자 : 작성일 20030921

* 지정종별번호 : 대전광역시기념물 제9호

 

 

 

 

ㄱ) 지형 및 주변환경

이 산성은 갑천의 우안(右岸)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토성(土城)이다. 이 산성의 최고처는 해발 145m로 표기되어 있으나 산성의 동쪽 기슭을 통과하는 도로변에서 볼 때에는 불과 60m~70m정도의 높이 밖에 되지 않으며 평지에 보다 접근해서 축조된 산성(山城)임을 알 수 있다.이 산성의 평면은 거의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데,북벽은 산 정상부를 감싸는 형식이고 동-서벽은 산능선을 따라 지형을 이용하여 구축하였으며 남벽은 동-서 양능선 사이의 경사면을 가로질러 축조되었다. 이 산성의 동벽 밖에는 대전-천안(天安)간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바로 지나가고 있으며 서벽 밖은 급경사를 이루고 갑천(甲川)에 이르게 된다. 현재 경부선철도는 이 산성 기슭을 따라 갑천과의 사이를 통과하고 있다. 이 산이 입지한 주변 지리는 남쪽으로 바로 회덕(懷德) 당산(堂山)과 마주 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갑천이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3㎞ 상거(相距)하여 계족산성(鷄足山城)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동남향으로는 700m의 근거리에 고회덕읍내(古懷德邑內)가 바라다 보이고 있다.

 

ㄴ) 체성(體城))

이 산성의 주위는 580m에 달하며 현재의 상태로서는 서-북벽은 석루(石壘)가 노출되어 있고 동벽은 토루상(土壘狀)을 이루고 있는데 그 외벽의 높이가 2.2m에 달한 부분도 있다. 남벽은 토·석 혼축(混築)의 상태인데 내벽 높이는 2.3m이고, 외벽고는 3.4m이며, 성체(城體)의 상부폭은 1.8m이다. 또한 이 남벽의 기저부(基底部) 폭은 토사가 무너져 내려서 그렇겠지만 5.2m에 달하고 있다.

 

ㄷ) 성내시설(城內施設)

이 산성에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문지(門址)는 남문지와 수구지(水口址)이다. 이 남문지의 문폭은 3.6m 정도로 이를 나서면 바로 평탄한 길로 이어지면서 회덕향교(懷德鄕校)가 있는 효자골에 이르게 된다. 이 남문지로부터 서쪽으로 10m중 떨어져서 2m 폭의 수구지가 있는데 성내(城內)의 우수(雨水)가 이를 통하여 유출되도록 가장 낮은 곳에 시설되어 있었으나 그 구조물은 붕괴되어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성내에서는 정지(井址)를 비롯한 다른 시설물은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다만 남문지를 벗어나 70m정도의 거리에 암반으로 된 우물이 있는데 현재에도 계속 샘물이 솟아나고 있어 당시 이 산성 내외의 식수원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우물부근의 전답으로 경작되고 있는 평지와 성내에 자리잡고 있는 묘소들 부근에서 삼국시대의 와편과 토기편들을 수습할 수 있다.

 

ㄹ) 고찰

《삼국사기(三國史記)》잡지(雜誌) 지리(地理)3 웅천조(熊川條)에 “비풍군(比豊郡)은 본래 백제의 우술군(雨述郡)으로 지금의 회덕(懷德)이다”라고 기록한 이후에 모든 지리지(地理志)에서 이를 수록하고 있어 회덕[현 대전광역시 대덕구]이 백제시대의 우술군(雨述郡)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삼국사기》신라본기 문무왕(文武王) 원년조(元年條)에는 "9월25일 진군위옹산성 지이십칠일 선소대책 참살수천인 수항지‥‥‥축웅현성(九月二十五日 進軍圍甕山城至 二十七日 先燒大柵 斬殺數千人 遂降之‥‥築熊峴城)"이라 하고, 계속하여 "상주총관(上州摠管) 품일(品日)이 일모산군태수(一牟山郡太守) · 철천(哲川)등과 더불어 군사를 거느리고 우술성을 공격하여 적수(敵首) 1천급(千級)을 베니 백제의 달솔(達率) 조복(助服)과 은솔(恩率) 파가(波伽)가 무리와 더불어 항복함으로 조복에게는 급찬(級 )의 벼슬을 내리어 이내 고타야군태수(古陀耶郡太守)로 제수하고 파가는 급찬으로 하고 아울러 전택(田宅)과 의물(衣物)을 내리었다"고 하여 옹산성(甕山城)을 함락시킨 신라군이 연이어 우술성을 공함(攻陷)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우술성이 당시 우술군 관내에 속해 있던 어떤 성을 가리켜 이름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술군의 치소(治所)를 말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그것이 우술군의 후신인 최근의 회덕관내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고 하겠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회덕관내에 있는 여타의 석축산성들 보다는 낮은 구릉에 토석혼축(土石混築)으로 이루어졌으며 구회덕읍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이 연축동산성을 백제시대 우술군의 치소인 우술성(雨述城)을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大田直轄市, 《大田의 城廓》, 1993)

출처 : 100namu
글쓴이 : 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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