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경계 밟기

닭재~늘내미재(8-3)

양각산 2009. 12. 14. 11:42

 

 언제 : 2009. 12. 13. 일요일(둘째)

 아우라지님과 시계대원(14 명?)

                    아우라지대장님, 양각산님, 태평동산님, 영영영님, 꽃을든남자님, 풍경소리님,

                 상수리, 사중사, 탱크, 날맹이, 타우, 강산에, 필례, 장끼등 14명 

 산행 일정

     출발(덕산마을 둥구나무 밑-07:50)-닭재-국사봉(8:45)-성터(9:27)-머들령(9:35)-성봉(10:03)-십자표지봉(541봉? 10:14)-

          골냄이재(10:38)-정기봉(11:38)-태실(?~1:11)-만인산(1:40)-먹티-구시계봉-늘내미재(3:45)

     뒤풀이 : 풍경

 

 

국사봉

 

 

 

머들령(머들령 前峰과 後峰은 모두 산성이었었다)

마달산성(?)

 

이 표지가 541봉(?)이라는데 잘 모르겠고, 덕유능선이 조망됐다

사중사님께 물어 알아냈다

그렇게 이 능선을 뻔질나게 다니며 덕유능선을 보고도 몰라봤으니.... 무식하게도

 

사진 중앙 멀리가 덕유산 향적봉이고 그 오른쪽 중앙에 두 봉이 남덕유산이다

 

서대산

 

새로 만든 이정표(골남이재라 표시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정기봉에서 서대산을

대둔산

 

 

태실 밑 벤치에서 점심 만찬 후 커피 타임

 

화장실 가는 길에 우러러 본 태봉재

 

 

옛 태봉재 도로

 

 

 선발대는 10분 전에 떠났단다. 사중사님이 남아 있었다

 

만인산

만인산에서의 조망.... 수많은 연꽃 같다

 

 

 

 

늘내미고개

 

 오늘 산행 중 의미있는 이를 만났다.

그는 오늘이 처음은 아니고 세 번째 아님 네 번째 만남일 것이다.

 지난 번 우중의 대전시계 때 말을 텄고, 그가 금산에 연고가 있음을 알았고, 소전다리를 얘기했었다. 금산여중을 나온 것도 알아냈었다.

그의 부군이 내 고등학교 후배인 것도 알고...... 그 후부터 괜히 고향 후배로 생각되어 말도 가끔은 반말이 튀어 나온다.

 오늘 산행꾼에 유일한 홍일점으로 참석한 풍경소리님과의 얘기다.

 옛날 사업 얘기, 인생 얘기를 참 조리 있게 잘했었다. 그 가녀러 보이는 몸매에 그 많은 세파를 견디면서도 맑은 모습을 유지한 것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풍경을 경영하는 소신도 멎져 보였다.

 대화 중에 땅 얘기가 튀어 나왔고, 땅 부자라 하니 시골 땅 값 별거 아니란다.

실마리 하나를 잡았다.

어디에 땅이 있어요? 무주요.

무주 어데? 부남면요.

흐흠, 부남면 어데? 모르실 거예요.

아니 내가 지리박사인 것 몰라요. 어디에요? 대유리요.

음 대유리, 거기 한티 말이지? 예!!!

그녀는 한티는 대유 1리이고 그의 마을은 대유2리란다.

대유2리를 나느 여지껏 공손말로 알아 왔었는데 "공수말"이란다. 이렇게 나는 그곳에 대해 해박하다. 괜히 우쭐해졌다.

더 아는 체해 본다.

목사리치는 알아?

그럼요. 공수말에서 새벽밥 먹고, 아버지 손을 잡고 목사리재까지 와서는 그 날망에서 손을 놓고 홀로 걷기를 했어요.

목사리치를 넘으면 금산군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주 끝 날망의 재에서 딸을 금산으로 매일(?) 학교 보내곤 했었단다.

그녀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목사리치를 내려온다. 홍도재께서 돌아볼 땐 아버지는 성냥개비 만했단다.

왜 내가 목이 멜까?

아버지께 효도 많이 해야겠어.

돌아가셨는데요. 그러면서도 해맑게 웃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있을 때 잘해 라고...

그렇지만 그 풍경소리가 불효했을 리 없다.

 

 얼마나 걸렸냐니까, 안 재 봤단다. 목사리에서 내려와 어디서 버스 탔냐니까, 음대리에서란다. 대단한 거리다!!!

열댓살 나이에 그 큰재를 넘나들었으니 대전시계를 그처럼 당돌히 부딪치고, 힘든 인생을 웃음으로 달관할 수 있겠다 싶다.

 한 맺힌 목사리재, 부남면 쪽에 목사리라는 마을의 두어 채 집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집터도 찾기 어려울 정도란다.

풍경소리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