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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전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서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 경주 문화원-
"안압지(雁鴨池)는 신라 문무왕 때에 경주에 조성된 인공 연못이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등에 나타나고 있다..[1]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곳이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신라 왕궁인 반월성(半月城)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본디 월지궁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조선의 묵객들이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국사기》에 동궁을 임해전(臨海殿), 즉 바다에 면한 건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서 안압지는 바다를 상징한다." -위키 백과-
경주를 제법 많이 다녀왔었는데도 안압지를 한 번도 못 찾았었다.
경주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이겠고, 경주에 대한 정보가 미숙하여서였을 것이다.
이번 여행 일정에 없었던 '안압지 야경'을 간다기에 마음이 달떴었다. 가이더 왈, 날씨가 따라 줘야겠고, 희망자가 반은 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그 날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아니 쌀쌀이 아니라 추웠다. 바람은 강풍이라 체감 온도는 영하를 훨씬 넘는 듯했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찬성하여,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저녁 후 버스에 올랐었다. 저녁하며 반주를 제법했기에 기분이 도도했었다.
시원찮은 디카로 후래쉬도 못 터트리며 마구 찍은 사진 ......
다음 어느 날 밝은 대낮에 다시 찾기를 기약하며, 허튼 사진이지만 기념으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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